닌텐도에서 출시한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가정용 거치형 게임기로, 줄여서 패미컴(ファミコン)이라고 부른다. 북미 시장에서는 아타리 쇼크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게임업계를 되살린 전설적인 게임기로 평가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패미컴 게임은 동키콩, 동키콩 Jr, 뽀빠이 이렇게 3개이다.
발매일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2003년 9월 25일이 되어서야 슈퍼 패미컴과 함께 생산이 종료됐다. 닌텐도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패밀리 컴퓨터의 전 세계 누계 판매량은 6,191만 대이며,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4,024만 장을 기록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이다.
1983년 7월 15일에 일본에서 '패밀리 컴퓨터'란 이름으로 처음 발매되었고, 북미에서는 1985년 10월 18일에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유럽에서는 1986년 9월 1일에 북미판과 같은 이름으로 발매됐다.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훼밀리' 또는 '패밀리'라고 불리였으며, 1989년에 현대전자에서 북미판 NES를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다수의 제품들이 수입 판매되었다.
닌텐도의 히트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이 뛰어난 품질로 패미컴에 이식되어 게임기 자체가 이미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후 허드슨이나 남코 등의 서드파티들의 참여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발매로 사회현상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
또한 젤다의 전설,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록맨, 메트로이드 등 패미컴에서만의 뛰어난 오리지널 게임들이 나오면서 역사상으로 매우 성공한 게임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나 서드파티 비즈니스의 기준을 확립하여 현재 게임기 산업 구조의 표준을 구축해 놓기도 했다. 따라서 명실상부한 1980년대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라고 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가격이 오르는 것을 감수하고 튼튼한 ABS수지로 만들었다. 반대로, 가격 절감을 위해 일본판 패미컴 컨트롤러는 본체에 부착되도록 했다.색깔은 흰색과 빨간색인데, 빨간색은 패미컴 개발 당시에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와 비슷한 색으로, 그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한다.
닌텐도는 각종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 앤드 워치의 성공으로 사업의 발판을 마련한 상태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진출을 준비하였다. 이미 가정용 게임기 사업은 미국의 아타리 2600을 비롯하여 일본의 반다이, 토미, 에폭, 브라질, 등이 진출하여 이미 가정용 게임기가 널리 보급된 상태였다.
패밀리 컴퓨터의 개발은 1981년 11월 무렵부터였다. 개발진들은 당시의 경쟁기와 차별화된 요소로 게임에 필요없는 요소를 줄이고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을 내기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CPU는 애플 II에서도 사용했던 8비트의 6502계열을 선택(리코 2A03), 그래픽은 리코사의 RP2CO2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의 하드웨어와 대비하여 비싸지만 질 좋은 타이틀을 공급하여 게임 소프트웨어로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패밀리 컴퓨터는 높은 하드웨어 성능과 재미로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제2의 아타리 쇼크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닌텐도는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서드파티의 라이선스 방식을 어렵게 하는 등 게임의 질을 철저히 관리하여 게임 시장을 확립할 수 있었고, 현재에도 계속되는 거대 시장의 성장으로 연결되게 된다.
일본판 패밀리 컴퓨터의 본체는 빨간색과 흰색의 플라스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가가 제일 쌌던 플라스틱의 색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개발자인 우에무라 마사유키(上村雅之)에 의하면, 실제로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기 때문에 채용했다고 하며, 야마우치가 입고 있던 머플러의 색상이었다고 한다.
북미판 NES는 일본판과 전혀 다른 케이스를 사용하는데 회색의 플라스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도 일본판보다 좀 더 큰 형태이다. 롬팩 장착도 일본판과 다르게 앞의 뚜껑을 열어서 VHS 비디오 테이프를 넣듯이 롬팩을 집어 넣고 뚜껑을 닫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기존 일본판 패밀리 컴퓨터 롬팩을 북미판 NES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어댑터도 존재하였다.
패미컴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컨트롤러이다. 왼쪽에 일체형 십자키, Select/Start 버튼, 오른쪽에 A/B 버튼을 배치하여 그때까지 중구난방으로 난립하던 컨트롤러 배치의 표준이 됐다. 앞부분에는 확장 컨트롤러 포트가 있는데, 이는 재퍼와 같은 주변 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북미판인 NES와 NES2는 컨트롤러가 탈착식인지라 확장 포트가 삭제되었다. 뉴 패미컴의 경우 컨트롤러가 탈착식으로 변경되었으나 일본판에는 주변기기 호환을 위해 확장 포트가 여전히 장착되어 있다.
발매 초반엔 그렇게 순조롭지는 못했다. 발매 1년만에 100만 대, 그리고 1984년까지 250만 대가 팔렸지만, 기기 불량으로 인한 클레임 처리, 쏟아지는 반품으로 상당히 고생했다.
설상가상으로 북미시장 진출을 위해 당시 세계 최대 게임기 기업이었던 아타리에게 패미컴 독점공급을 하기로 계약을 하였지만 아타리 쇼크가 터지면서 북미게임시장은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미국 소비자의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문제를 타파하기위해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이라는 제품으로 출시하려 했다. 패미컴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치 세련된 가전제품이나 컴퓨터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하였으나 성능이 게임기 그 자체였기에 이전략 또한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 제품으로서의 접근을 포기하고 장난감 제품으로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85년 6월 자로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 다시 출품했다. 기기명칭도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에서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으로, '카트리지'라는 이름 대신 '팩'으로, '콘솔' 대신 '컨트롤 덱'으로 개명했다. 또한 재퍼와 R.O.B. 등의 주변기기를 내세우며 장난감임을 강조하고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공격적인 보증정책을 내세우며 북미시장에 게임기를 출시하게 된다.
닌텐도는 NES를 1986년 한 해에만 110만 대를 팔아치웠으며, 1987년에는 누적 판매량 500만대를 돌파했다.미국에서의 NES의 성공 덕에 아타리 쇼크 이후 1985년에 1억 달러 규모밖에 되지 않았던 비디오 게임 시장은 1986년에 무려 4.3억 달러로 4배 넘게 팽창했다. 닌텐도는 1986년에 무려 3.1억 달러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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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출처 : 나무위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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